고대산은 해발 832 m 로 금강산 가는 길목, 경원선 철도가 끊겨 있는 철도중 단점인 연천군 신탄리역에 인접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으며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고 등산으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으로
등산여행에는 안성맞춤이다. 고대산(高臺山)의 유래는 "큰고래" 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薪炭)지명에서 연루된 것으로 보이며 "방고래"(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하고 함)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高臺山)이라고 한다.
고대산 지형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 는 뜻과 의미가 담긴 곳이라 하여 고태(高台)라고도 표기하였다. 고대산은 옛부터 광범한 산록과 울창한 산림으로 말미암아 임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목재와 숯을 만드는데도 적합한 곳으로 부락으로 형성된 주막집들이 있다하여 신탄막(薪炭幕)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으며, 실질적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숯이 유명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1907년 11월 4일 의병진 150명과 임진강에서 의병들을 토벌하러 파견된 일본군 보병 제20연대 8중대와 연천에서 격전한 후 신탄막에서 흩어지고 의병진 60명이 고대산에서 다시 일본 군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곳으로서,
우리 선열들의 용맹스러운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Tour API
보개산은 해발 877m이다. 최고봉인 지장봉(地藏峰)의 모양이 큰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보개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보개산으로 부르게되었다. 정상에는 연천군에서 설치한 '고롱이'와 '미롱이'라는 정상석이 있다. 고려시대 궁예가 은거했다는 보개산성(보가산성)의 유적이 남아있다. 보개산성은 보가산성 또는 궁예왕대각대성지라고도 불리는데 전해지는 설에 의하면 왕건(고려 태조)에게 패한 궁예가 이곳에 산성을 쌓고 반격을 준비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산의 주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데 북쪽에는 고대산(832m)으로 어어지며 남쪽으로는 종자산(643m)으로 연결된다. 동쪽 능선에는 담터계곡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보개산[寶蓋山]
금학산은 해발 947 m로 강원도 철원군의 서남부 동송읍 이평리에 위치한 산이다 『여지도서』 철원도호부에 "금학산(金鶴山)은 부 남쪽 15리에 있다. 수정산(水精山)에서 와서 고남산(古南山)의 주맥이 되었다. 우뚝 솟아 하늘에 뻗어 지방의 명산이 되었다. 산 위에 기우처(祈兩處)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를 비롯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부의 남쪽 경계에 빠짐없이 묘사되어 있다. 산의 형세가 학이 내려앉은 모양을 하고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 한다. 즉 오지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 줄기는 학의 오른쪽 날개에, 이평리 방향의 줄기는 왼쪽 날개에 비유하며, 그 날개 품안에서 뻗어나온 지역인 초장족(初長足) · 이장족(二長足) 등의 마을은 학의 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도선국사는 궁예가 송학으로부터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궁을 짓되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지만, 고암산으로 정하면 국운이 25년 밖에 못 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궁예가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18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고 전해온다. 산의 정상인 기봉(旗峰, 깃대봉)에는 남이장군의 용마가 나왔다는 용탕(龍湯)과 기우제를 지내던 터가 있으며, 중턱에는 마애석불 · 부도석재(浮屠石材) 등이 남아 있다. 북쪽 산록에 위치한 칠성대(七星臺)는 궁예가 소원을 빌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산세는 부드럽지만 산속으로 들어서면 곳곳에 매바위 · 용바위 · 칠성바위 · 탱크바위 등 기암들과 암봉들이 많이 나타난다. '산자락 반은 단풍, 반은 진달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 단풍과 봄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평리 일대에는 금학과 관련된 상호가 많으며 금학연지(金鶴蓮池), 금학체육공원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 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금학산[金鶴山, Geumhak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