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 마을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민속 마을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며 물돌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지금도 마을주민의 70%가 류씨이다. 풍산 류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약 600여 년 전으로 류씨가 터를 잡기 전에는 허씨와 안씨가 먼저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전으로는 하회탈의 제작자가 고려 중엽의 허도령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하회마을에서 강 건너 광덕동에는 허정승의 묘가 있어 해마다 류씨 가문에서 벌초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이를 빗댄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 류씨 배판"이라는 속언이 전해지고 있는데, 선주민들을 내몰게된데는 안씨집안의 딸 하나가 류씨집안으로 출가를 하면서 안씨 집안의 기운이 외손인 류씨들한테 이어져 씨족의 터전을 빼았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안동하회마을 구경을 마치고, 부용대로 이동하기전에, 매표소 주차장 옆에 있는, 하회세계탈박물관도 구경해봤습니다.
택시를타고 부용대로 이동했습니다. 부용대 올라가기전 좌측에 있는 화천서원 모습입니다.
부용대까지는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입니다. 걷기 좋은 숲길입니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안동하회마을 파노라마 풍경
다음코스는 안동 학가산 등산입니다. 최단코스로 갔다왔습니다.
천주마을에서 시작하여, 학가산 정상만 보고, 다시 천주마을로 하산했습니다.
학가산 등산로 들머리 풍경입니다.
학가산 정상은 국사봉입니다. 통신 중계소가 있는곳 뒷쪽이 정상입니다.
MBC옆 등산로를 따라서, 가면 됩니다.
유선봉, 삼모봉, 마지막으로 국사봉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나온 통신중계소 풍경입니다.
국사봉돌탑에서 약간만 위로 가시면, 학가산 정상석과 멋진 안동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동 학가산 정상석입니다. (높이882m)
학가산 등산 마무리합니다.
다음 코스는 봉정사로 이동했습니다.
대한민국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672년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자료들이 소실되어 창건 이후 사찰역사는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1972년 봉정사 극락전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공사를 진행할 때 상량문에서 고려시대 공민왕12년의 1363년에 극락전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런 사실이 발견되어 봉정사 극락전이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걸어올라가시면, 유네스토 세계문화유산인 봉정사를 볼 수 있습니다.
봉정사의 봄 풍경 이쁘죠?
다음으로 방문한 장소는 학봉구택입니다.
의성 김씨의 종가인 학봉구택은 학봉 김성일의 8세손 김광찬(金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의 자리에 옮겨지었고 현재의 학봉구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다 1964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원래 ㅁ자였던 본채는 한쪽에 증축을 하여 巳 자 형태가 되었고 안채의 오른쪽 6칸을 대청으로 꾸몄으며 왼쪽에는 안방 2칸을 두고 끝에 부엌을 놓았다. 부엌은 천정 높이를 낮추고 상부에 고방을 두어서 세간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대청이 집의 규모에 비하여 넓은 것은 제사가 많은 종택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코스는 제비원-연미사입니다.
국가 보물 제비원 석불은 몸을 바위에 선각으로 새긴 데 비해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해 얹어놓았다. 몸체의 선각과 얼굴의 뚜렷한 인상이 매우 대조적이다. 머리의 육계가 큼직하고 윤곽이 뚜렷하여 매우 개성이 있는 모습이다. 몸체를 이루는 자연 암석도 위압적이지만, 입을 꾹 다물고 눈에 힘을 잔뜩 준 모습이 매우 권위적이며 힘있어 보인다. 눈·코·입의 선이 각지고 매우 뚜렷하여 이목구비가 분명한 인상이다. 자연 암석으로 이어진 목에는 삼도가 희미하게나마 새겨져 있다.
2일차에 방문한 도산서원입니다.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41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도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대군사부·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9년(1693)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숙종 37년(1711)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묘문 3칸·강당 4칸·서재 3칸·남재 4칸·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도산’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도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도산서원 입장료는 성인-1명, 1,500원입니다.
섬처럼 보이는 곳은 시사단입니다.
봄기운 가득한 도산서원 모습입니다.
나무가 멋지네요.
2일차 다음일정으로 퇴계고택을 방문했습니다.
다음 방문지는 이육사문학관 입니다.
이육사문학관은 이육사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길이 전하고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의 흩어져 있는 자료와 기록을 한곳에 모아 육사의 혼, 독립정신가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그의 출생지인 원천리 불미골에 전시관(971.75m2), 생활관(497.28m2), 이육사 생가(90.72m2)가 지어 졌다.
슬픈 사연이 있는 수감번호 264번, 이원록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동벽화마을과 예끼마을도 둘러봤습니다.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 예끼마을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곳은 월영교입니다. 너무 좋아서, 낮에도 가고, 밤에도 구경했어요.
안동댐 하류에 있는 월영교는 폭 3.6m, 길이 387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다리 이름은 주민 응모작 중 달골〔月谷〕, 월영교 건너편 엄달골 등 달과 관련된 이 지역의 유래에서 착안했다. 1998년 택지 개발로 고성 이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무연고 묘에서 400년이 훨씬 넘은 편지와 미투리가 발견됐다. 죽은 남편에게 한글로 쓴 편지와 남편의 쾌차를 빌며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감동과 여운을 남겼는데, 그 미투리를 모티프로 월영교를 세웠다. 월영교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법흥교까지 2km 이어진 안동호반나들이길과 원이엄마테마길이 조성돼 애절한 사랑의 감동을 되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