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북구 문화거리 탐방 후기를 들고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산책나오기 딱 좋은 곳이에요.
성북동 이곳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옛 모습과 현대의 모습을 번갈아보며 여러감정을 느끼곤 하는데요.
성북동 그 깊은 역사를 따라걸으며 온 몸으로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첫 번째 장소는 성북동의 우리옛돌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은 마을버스 02의 종점에 있으며, 바로 우측엔 정법사 절로 향하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심청터널, 삼청각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13길 66 / 02-986-1001 / 성인 입장료 3,000원

우리옛돌박물관은 국내외로 흩어져있던 한국 석조유물을 한 자리에 모아 건립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석조전문박물관'인데요.


이곳 문화재단의 노력으로 환수해온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문화재 70여점, 다양한 석탑, 불상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13길 44 정법사(조계종) / 02-762-0774

바로 옆의 정법사입니다.
삼각산 정법사는 원래 복천암(福泉庵)으로, 조선 후기 유명한 학승이자 선사였던
호암 체정 대선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복천암은 국운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찰이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68 길상사(조계종) / 02-3672-5945


삼각산 길상사입니다.
이 일주문은 고급 요정이던 '대원각'시절에 김영한(길상화)이 만든 대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영한은 누구고, 대원각은 뭐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길상사는 이 이야기를 알고가면 더욱 좋습니다.



도심 속 사찰로 유명한 길하고 상서로운 절, 길상사.

길상사는 무려 10년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세워질 수 있었던 절입니다.
그것도 국내 3대 요정 중 하나이던 '대원각'을 사찰로 탈바꿈 시킨건데요. 어째서일까요?

그 이유는
,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이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큰 감명을 받아
대원각을 기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0년간의 요청 끝에 길상사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후 김영한은 법정스님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김영한은 당시 천억원의 재산을 법정스님에게 통째로 시주하는 것을 보고
기자들이 아깝지 않느냐고 하자,
"이미 없는 것을 만들어야 큰 일이지 이미 있는 것을 준 것인데 큰 일이 아니다"라고 했는데요
그렇게 김영한은 베풂의 귀감이 되어 감동을 주었습니다.

공덕주 길상화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헌신과 나눔의 귀감으로 남아있는데요.
그녀는 시인 백석과 세기의 사랑을 했다고 전해집니다.(김영한의 주장)

김영한은 국내 최대 요정이었던 대원각의 주인으로 열여섯에 기생이 되었고,
시인 백석을 만나 '자야'라는 아명을 얻으며 3년간의 뜨거운 사랑을 하게됩니다.
시인 백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죽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다" 라는 말을 하였지만
기생 출신인 자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백석의 집안이 반대하며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 시켜 갈라놓으려 합니다.
부모님의 반대에 백석은 북쪽으로 가게 되고,
이후 둘은 죽을 때까지 영영 서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이후 대원각을 시주하며, 김양한은 '1,000억원의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하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자야로써 백석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자신을 '죄 많은 사람' 이라칭하며, 대원각이던 이곳에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퍼지길 바랐던 김영한.
첫 눈이 내린 날 길상사 뒤쪽 언덕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녀의 유골은 첫 눈오는 날 길상사에 뿌려졌습니다.
김영한 사당 아래에는 시인 백석의 대표작인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시가 쓰여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9 / 02-3673-4251
성북동성당은 1976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 96 / 02-744-0025


선잠단지: 양잠의 신 서릉씨를 모시고 한 해의 안정과 풍요를 기원하는 선잠제가 시행되던 장소입니다.
선잠제는 왕실 의례 중 하나로써 음악과 노래, 무용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이며
선잠단과 선잠제의 가치를 알리는 성북구 최조의 박물관입니다.

전시된 양잠과 직조 관련 도구들을 통해 누에고치에서 비단이 되는 과정과
왕실예복으로 사용된 비단. 궁중에서 사용된 소품, 장신구 등
조선시대 의복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 문화 공간입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


심우장은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이 1933년에 지은 집입니다.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민족대표 서른세명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3년동안 옥살이를 했는데요.


출옥 후에도 선생은 일본 경찰의 감시아래 강연 들 여러 방법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힘쓰다가 1944년
이곳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한용운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한 만해기념관도 한때 이곳에 있었으나 부지가 협소하고 심우장 건물 자체의 보존도 필요하여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인근에 새로 건물을 만들고 이전했습니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26길 8 상허 이태준 가옥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수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입니다.

이태준은 이곳의 당호를 '수연산방'이라 할 만큼 공간에 대한 애착이 컸던걸로 보이는데요, 달밤,돌다리,코스모스피는정원.황진이. 왕자 호동 등 수많은 문학작품을 써냈습니다.

카페 수연산방에서는 전통차와 다과를 판매하고있습니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 143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53년에 설립된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남자 수도회인 한국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입니다.
방유룡 신부가 설계하고 1959년에 완공한 이 건물은 역사적, 종교적 가치가 큰 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피정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신앙인들의 재교육 및 영성 생활을 돕기 위한 피정 지도를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피정 : 성당·수도원 등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을 지칭하는 용어.
성북동 길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 많은 것 같은데요. 걷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지는 문화거리.
여러분도 꼭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